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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뉴스클리핑 - “소리 이용한 시각장애인테니스 보급 최선” <주간조선 2011.07.18>

작성자협회관리자

작성일시2011-07-26 오후 4: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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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라종일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테니스광(狂)입니다.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이 테니스예요. 제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시각장애인들도 똑같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라종일(71) 회장은 “그래서 테니스계 원로들이 회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며 웃었다. 지난 7월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회원제 식당 서울클럽에서 만난 그는 7월 15일 열린 제2회 시각장애인테니스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주 우석대 총장을 맡았다가 지난 3월 물러난 라 회장에게 테니스는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였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 라종일이 시각장애인테니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테니스를 좋아하는 기호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처럼 시각장애인테니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원로 애호가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죠.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도 테니스를 즐기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돼 있는가가 국가 선진화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공 안에 구슬… ‘소리’ 로 테니스 경기
   
   라 회장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은 ‘소리로’ 테니스를 친다. 공 안에 소리 나는 구슬이 들어 있어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직경 9㎝의 스펀지공 안에 탁구공이 있고, 이 탁구공 안에 다시 구슬이 들어 있는 구조다. 구슬은 공이 물체에 부딪힐 때마다 소리를 내는데, 선수들은 이 소리를 듣고 공의 위치를 알아차린다. 물체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저시력 선수들을 위해 공은 두 가지 색깔을 사용한다. 공이 눈에 잘 띄도록 바닥이 어두운 색인 경우 노란색 공을, 바닥이 밝은 색인 경우에는 검은색 공을 쓴다.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들은 말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서버는 공을 서비스하기 전에 “갑니다”라고 외치고, 리시버는 “네”라고 대답한다. 선수의 시각장애 정도에 따라 경기 규칙을 구분해 적용하는데, 전맹(全盲)의 경우 공이 세 번까지 바운스(공이 튀는 것)해도 칠 수 있게 해 준다. 반맹(反盲) 선수의 경우 기회는 두 번까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공이 한 번 바운스할 때 소리를 듣고 위치를 파악한 뒤 두 번째 바운스할 때 공을 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경우 3개월 정도의 연습 기간을 거치면 큰 어려움 없이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전맹의 경우 최소 1년 이상 연습해야 경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연습 기간을 거쳐야 하는 선수들을 위해 스펀지공을 사용해 경기나 연습 중 공을 맞을 때의 부상을 최소화한다. 일반인처럼 활발히 움직일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해 경기장도 미니 사이즈다. 약 6.1×13.4m의 크기로, 일반 코트(8.23×23.77m)의 절반 크기보다 조금 작다. 네트 중앙의 높이도 80㎝로 일반 네트보다 11㎝가 낮다.
   
   “비용 마련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라 회장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장비가 대부분 특수 처리돼 비싸다고 말했다. 탁구공이 들어 있는 특수 스펀지공은 몇 번만 쳐도 틈이 벌어지기 때문에 쉽게 못 쓰게 된다. 특수 스펀지공은 일본에서 들여오는데, 가격도 개당 1만원으로 비싼 편이다.
   
   공이 날아오는 동안에는 소리가 나지 않아,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는 방향을 알 수 없다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선수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날아오는 동안에도 소리가 나면 좋겠는데, 특수 기술이 들어가 너무 비싸다 보니 사용이 쉽지 않습니다.” 라 회장은 “후원 계좌를 통해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며 “시각장애인테니스가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에도 시각장애인테니스 보급
   
   라 회장이 이끄는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은 시각장애인에게 테니스를 보급하기 위해 라 회장과 그의 지인들이 지난 2009년 결성했다. 연맹은 후원금으로 운영 중이며, 현재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빛맹학교, 부산맹학교 등 총 5곳의 국내 시각장애 특수학교와 중국 상하이·만주 등지의 학교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테니스 장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에는 제1회 대회를 열어 시각장애인테니스를 알리는 데 힘썼다.
   
   지난 7월 15일에 열린 제2회 대회에는 일본 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의 전맹 선수단도 참가했다. 시각장애인테니스를 먼저 시작한 일본 연맹이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시작은 일본이 먼저였지만 최근에는 우리가 많이 따라잡았죠. 늦게 시작한 우리가 시각장애인테니스 보급을 더 잘한다는 말이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올 정도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시각장애인테니스는 시작 단계에 있다. 영국이나 중국,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 곧 보급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북한에 꼭 보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지금보다 더 좋아지면 꼭 북한에 시각장애인테니스를 보급할 거예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나라의 경제적 수준과 관계가 없습니다. 실제로 북한 사람들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시각장애인테니스를 패럴림픽 종목으로 등록하는 것도 추진 과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 인지하지 못할 뿐”
   
   그는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나아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집안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은 장애를 떳떳하게 밝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옆에서 겪어본 시각장애인들은 하나같이 밝은 사람들이었어요. 테니스 하나를 하더라도 열심히 하죠. 울컥 하고 올라오는 감동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그가 지난 3월 25일까지 총장으로 재직했던 전주 우석대학교에는 1년에 한 번씩 ‘장애인 체험’을 하는 행사가 있다. 그는 눈을 가리고 학교 정문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체험을 했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죠.” 그는 “사실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고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만 장애인인가요. 육체적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 지적 장애도 모두 장애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그가 2009년 4개 언어로 출간한 창작동화 ‘비빔밥 이야기’에는 자연재해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재료를 한데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빔밥의 모든 재료가 섞여 하나의 맛을 내고, 자기밖에 모르던 마을 사람들이 화합을 이룬다. 책은 “일반인과 장애인 모두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가르침과 닮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존재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역시 완벽할 순 없죠.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