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69호 2021. 11 발행: 문화체육관광부 www.mcst.go.kr 발행인: 황희 발행일: 2021. 11. 1. 제작협력: (주)도서출판 점자 www.kbraille.net 문의: 02-3426-7212, 044-203-3016 음성 사서함: 02-2092-9000 (7511) 이 책자에 수록된 내용은 정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contents 사람의 향기: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 점자동화책 기부한 대전구봉고등학교 4 알짬 정보: 시각장애인 위한 ‘전국 8도 점자지도’ 완성 외 15 공감 정책: 탄소중립 세계 열네 번째 법제화 25 공감 현장: 코로나 시대 빚 때문에 고통받고 있나요? 35 짧은 글 긴 여운: 한국 갯벌, 세계자연유산 꽃으로 피어나다 49 재활과 건강: 손이 찌릿찌릿, 심각한 병은 아닐까? 58 이동우의 음악칼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67 살며 생각하며: 진정한 장애인식개선 83 문화재 이야기: 동국정운 (국보 제142호) 94 사람의 향기: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 점자동화책 기부한 대전구봉고등학교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첫걸음으로 기억하겠습니다” 한 해 국내에서 출판되는 책은 약 6만여 권이다. 그중 점자책의 비율은 0.7%에 불과하다. 특히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동화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그래서 시각장애 아동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야 한다. 지난 9월 대전구봉고등학교 1학년 학생 23명이 점자동화책 10권을 제작해 대전시청각장애특수교육지원센터에 기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4개월간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아동용 대상 도서를 선정하고 점자로 번역한 것.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장서윤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A. (장서윤 교사)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을 주제로 교육을 종종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영상을 주로 활용하는 게 아쉬웠어요. 장애인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학생들에게도 뜻깊은 경험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교내 특수교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면서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동화책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A. (장서윤 교사) ‘나는 개다(백희나)’, ‘괜찮아(최숙희)’, ‘돼지책(앤서니 브라운)’ 등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골랐습니다. 아이들이나 부모님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책이기도 하고요. 작업은 모둠별로 책 한 권씩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Q.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김영찬 학생) 저는 매달 두 번씩 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시각장애인을 돕는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이라기에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했어요. 그런데 대전맹학교에서 장애 체험을 하면서 제가 장애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부족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시각장애 아이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어 점자동화책 제작에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A. (소은채 학생) 저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막연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는데, 점자가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처음엔 힘들었어요. 동화책 내용을 라벨지(투명 스티커)에 직접 찍어 해당 페이지에 부착하는 작업을 했는데, 점자에는 정자뿐 아니라 약자가 있다는 걸 알고는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Q. 학생들이 참 대견스럽습니다. A. (장서윤 교사) 그렇습니다.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어 프로젝트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프로젝트는 자율 활동으로 진행됐어요. 특수교사 선생님으로부터 점자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학생들 스스로 유튜브를 통해 점자를 공부하고 익혔습니다. 점자를 처음 접할 때에는 재미있어하다가 막상 점역 작업에 들어가니 너무 어렵다며 당황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A. (최준식 학생) 특수교사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점자일람표를 보고 점필로 하나하나 찍는 작업은 정말 어려웠어요. 눈으로 확인해보니 오탈자가 많더라고요. 검수 작업을 도와주신 특수교사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힘들었던 만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요? A. (조승아 학생) 책을 만들면서 ‘이건 그림을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때가 많았어요. 예쁜 그림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 점자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시각장애 아이들이 우리가 제작한 점자동화책을 읽는 모습을 봤는데,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희망합니다. A. (조혜원 학생)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사람만이라도 노력한다면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식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앞으로 비슷한 활동을 더 해볼 생각입니다. Q. 프로젝트 참여 후 달라진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나요? A. (김수인 학생) 배리어프리 제품에 관심이 생겼어요. 의외로 세탁기나 밥솥 같은 가전제품에는 점자 표기가 없더라고요. ‘그럼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사용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최근에는 터치 기능을 활용하는 가전제품이 늘고 있는데, 오히려 시각장애인은 사용하기가 더 힘들다고 해요. 대학에 진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할 계획인데, 훗날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면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할 겁니다. A. (김수현 학생) 저는 건축공학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건축물에 점자 표기가 있는지 살펴봤는데, 좀처럼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만약 제가 건물을 짓는다면 꼭 사회적 약자를 고려해 설계하고 싶어요. Q. 앞으로 제2의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를 계획하는지요? A. (장서윤 교사) 한 학생이 점자 번안이 어려웠다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점역에 특화된 키보드를 개발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불편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바람직한 사회 발전을 위해 교사로서 할 일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는 일회성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활동입니다. 다음에는 오디오북 제작을 국어과 수행평가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이 전국 곳곳에서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알짬 정보 시각장애인 위한 ‘전국 8도 점자지도’ 완성 외 01. 시각장애인 위한 ‘전국 8도 점자지도’ 완성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국 8도 점자지도가 완성됐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올해 경상남·북도의 점자지도를 제작·배포해 전국 8도 점자지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국토지리정보원은 2014년 대한민국전도와 세계지도에 대한 점자지도 제작을 시작으로 2015~2016년 서울, 6대 광역시, 제주도를 중심으로 좀 더 상세한 점자지도를 제작했다. 2018년부터는 전국 8개도에 대해 행정구역별 자연지형, 생활정보 등을 수록한 점자지도를 제작해왔으며, 올해 경상남·북도 점자지도 배포를 통해 전국에 대한 상세한 점자지도 보급을 완료했다. 국토부는 세계 지리 수업 시 보조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세계지도를 제작해 전국 맹학교, 점자도서관 등 약 110여 곳의 관련 기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사공호상 국토지리정보원장은 “향후에도 색맹 등 색각이상자를 위한 지도도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공간정보도 지속적으로 제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의 031-210-2700 02. 앱으로 시각장애인 철도역사 이동 돕는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모바일 앱으로 시각장애인의 철도역사 이동을 돕는 음성유도기 중계기를 최근 개발했다. 현재 철도역사 등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음성유도기는 전용 리모컨으로만 조작할 수 있고, 리모컨 분실 등의 이유로 이용률이 낮았다. 이에 철도기술연구원은 휴대전화 앱을 활용하는 음성유도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위치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기존 제품의 문제점인 여러 음성유도기가 동시에 중복으로 안내되는 방송 문제를 해결해 이용자의 혼선을 방지했다. 음성유도기의 작동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사용 중 오류를 쉽게 해결하고, 유지보수 또한 편리해졌다. 모든 제조사의 음성유도기에 적용 가능하고, 현재 설치된 제품을 교체하지 않고도 저렴한 중계기만으로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문의 031-460-5000 03. 세종점자도서관 10월 개관 시각장애인의 정보 습득과 문화생활을 돕기 위한 세종점자도서관이 10월 세종시 보람종합복지센터 내에 문을 열었다. 보람종합복지센터 1층에 위치한 세종점자도서관은 열람고, 서고, 자료제작실, 녹음실(멀티미디어실), 자원봉사실 등을 갖췄다. 장애인복지법 제58조에 따른 장애인지역사회 재활시설로 점자·음성도서 및 자료 제작, 정보화기기 활용 교육, 맞춤형 학습 지원,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재활 교육과 평생학습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도서관에는 시설장과 사서, 사회복지사, 점역교정사, 점자지도원 등 다섯 명이 근무한다. 문의 044-120 04. 송중기·손흥민이 소개하는 천연기념물 점자책 발간 축구선수 손흥민과 배우 송중기가 천연기념물을 소개하는 점자책이 발간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제작하는 ‘자연유산 멀티미디어 점자책’은 평소 천연기념물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년째 발간하는 자연유산 소개 책자다. 연구소는 2020년 10월 첫 발간 때 450부를 만들어 전국 맹학교 13곳에 각 5부씩 제공했다. 나머지는 점자도서관과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에 배포했다. 올해 발간된 점자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 70종의 울음소리와 외양 묘사 세밀화, 관련 민요나 동요 등을 곁들인 목소리 해설과 점자로 소개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점자의 높이를 이전보다 더 높이고, 세밀화 그림을 단순화시켜 가독성이 개선됐다. 또한 소리펜 사용법을 점자로 추가해 책자 활용을 쉽게 한 것이 특징이다. 모든 점자는 천연재료를 이용한 물방울방식의 특수점자로 제작됐다. 이번 해설에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재능기부로 참여해 ‘검독수리’ 편 해설을 맡았다. ‘매와 사향노루, 올빼미’ 편은 SK(주) C&C의 지원으로 라이언로켓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음성생성기술을 적용한 배우 송중기의 목소리로 제작됐다. 송중기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목소리 기부 의사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점자책 총 570부를 만들어 맹학교 학생 221명 모두에게 한 부씩 제공하고, 나머지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도 배포할 계획이다. 문의 042-860-9114 05. 전국 장애인 e스포츠 대회 ‘D-war’ 개최 ‘전국 장애인 e스포츠 대회 D-war 그랜드 파이널’이 11월 20일 서울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된다.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과 한국장애인연맹이 주최하는 D-war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개인전, 스타 크래프트 2인 1팀, 카트라이더 개인전 등 3개 종목으로 진행된다. 연맹 관계자는 “이번 대회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공식적인 장애인 게이머들의 e스포츠 리그 발전을 위한 무대”라면서 “500만 원 상당의 상금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문의 02-3147-2348 06. 제22회 가치봄영화제 개최 제22회 가치봄영화제가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CGV 피카디리1958에서 열린다. 가치봄영화제는 경쟁부문 상영작을 포함한 영화제 전 작품을 한글 자막, 화면해설 삽입 버전 작품으로 상영하는 국내 최대 장애인영화제다.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경쟁부문 상영작 16편을 발표하고, 사전 활동 및 영화제 행사 기간 자원활동가를 모집한 바 있다. 문의 02-2038-3187 김수정 기자 공감 정책 탄소중립 세계 열네 번째 법제화 - 2030년까지 온실가스 35% 이상 감축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경제·사회 전환을 법제화한 탄소중립기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환경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법적 기반으로써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8월 31일 국회를 통과해 9월 1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공포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열네 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제7조에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비전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지 열 달 만이다. 이에 정부는 탄소중립 이행 절차를 체계화하고 기후영향평가와 기후대응기금 등의 정책수단을 추진할 계획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제외한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세계 모든 국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12월 유엔에 제출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통해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고, 이어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탄소중립을 달성해 나가기 위한 법정 절차와 정책수단을 담았다. - 2050년 탄소중립 국가 비전으로 명시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의 의의는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한 데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 기본계획 수립 및 이행점검 등의 법적 절차를 체계화했다. 이와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지향하는 중간단계 목표를 설정했다. 이 법 제8조는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명시했다. 정부가 11월 유엔에 제출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하한선을 설정한 것이다. 이는 2018년부터 2050년까지 선형으로 감축한다는 가정 아래 2030년 목표가 37.5%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35% 이상’이라는 범위는 2050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지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가 2018년 대비 35%를 감축 목표 하한선으로 설정한 것은 이후 확정 과정에 상향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라는 게 국회와 정부의 설명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안호영 의원은 “30~40% 범위로 해야 한다는 정부 의견도 있고 국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45%나 50% 수준까지 해야 한다는 위원들 내부 의견도 있었다. 최저선을 35%로 해서 상한을 열어두는 것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가 35%로 정한 것은 (앞으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여러 이해관계 당사자와 국민이 더 논의할 수 있게 배려한 점도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0월까지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확정하고 11월 유엔에 제출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해 왔다. 국회에서 35% 하한선을 담은 법이 통과되면서 정부 검토안 가운데 35%에 미달하는 안은 제외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32.5% 감축안도 만들어 보려 했는데 이제는 35%를 최저선으로 해서 37.5% 감축, 그보다 좀 더 높은 감축안 등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산업구조 전환 위해 기후대응기금 신설 또한 미래세대와 노동자, 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치(거버넌스)를 법제화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따라 5월 발족해 운영 중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법률에 따른 위원회로 재정립하게 됐다. 아울러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국가 주요 계획과 개발사업 추진 때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는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와 국가 예산계획 수립 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점검하는 온실가스 감축 인지 예산 제도를 도입했다. 산업구조 전환과 산업공정 개선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는 등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수단을 마련했다. 이밖에 탄소중립 과정에 취약지역·계층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구체화했고 중앙 일변도의 대응체계를 중앙과 지역이 협력해 공유하는 체계로 전환했다. 한정애 장관은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으로 우리나라가 향후 30여 년간 추진해나갈 탄소중립 정책의 근간이 마련됐다”면서 “앞으로 법률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확정하고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 등 새롭게 시행되는 제도의 설계를 진행하는 등 시행 준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9월 2일 청와대에서 에너지, 산업, 건물, 교통, 기술개발, 외교 등 관계부처의 탄소중립 추진 현황에 대해 보고를 받고 향후 계획을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깊이 있게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열리는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우리의 상향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기로 국제사회에 공약한 만큼 각 부처와 탄소중립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주간 정책정보지 <공감> 공감 현장 코로나 시대 빚 때문에 고통받고 있나요? -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문을 두드리세요! #사례1 2급 청각장애인 이 씨는 장애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다. 건설 현장에서 이른바 ‘잡부’라 불리는 기술 없는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일 역시 의사소통이 힘들어 매일 할 수 없었다. 제주도에 가면 건설 관련 일이 많을 거라는 지인의 말을 믿고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구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체의 임금 체납으로 현금 융통이 어려워지자 신용카드 두 개로 생활비와 체류 비용을 감당했다. 이런 생활이 1년 넘게 이어지자 카드빚이 불어났다. 카드 채무만 1,800만 원. 이 씨처럼 처분할 재산도 없고 장애까지 있는 일용직에겐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사례2 중년 여성 박 씨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이 코로나19 이후 힘들어지면서 10억 원이라는 빚을 졌고, 그중 1억 원가량은 본인이 짊어지게 된 상황이었다. 한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박 씨는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열심히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신용등급이 낮고 빚이 많아 이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가 고금리 대부업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자율 20%가 넘는 고금리 대부업 대출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신용등급은 점점 낮아졌고 대출받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례3 취업준비생이던 20대 김 씨는 2020년 11월 취업 사기를 당해 대출금 1,500만 원을 떠안게 됐다. 당시 취업 사기 회사로부터 숙박시설에 감금까지 당한 터라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을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소득이 없는 김 씨는 이 대출금으로 인한 장기 연체로 채무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 성실 연체자 신용 회복 지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9일 열린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성실 연체자에 대한 신용 회복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선 사례처럼 코로나 시대 채무나 신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적절한 금융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도움받을 만한 방법이 있을까?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이하 통합지원센터)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된다. 2014년 11월부터 통합지원센터와 서민금융진흥원, 미소금융재단, 신용회복위원회, 국민행복기금(캠코), 저축은행 등이 손잡고 시행하는 서민금융 종합 상담 지원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채무조정은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채무자를 대상으로 채무자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통합지원센터에서는 신용회복위원회와 연계해 개인 워크아웃(채무재조정)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법원의 개인회생, 개인파산 신청도 돕는다. 정부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방안’의 하나인 통합지원센터는 수요자를 위한 서민금융 원스톱 서비스 지원 및 서민금융의 질적 개선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자금 대출, 채무조정, 고금리 전환, 휴면예금 조회 및 지급 신청 등 서민금융기관의 고유 업무를 각기 수행하고 필요하면 상호기관 간 업무를 연계한다. 또 맞춤형 서민금융 지원을 위해 서민형 PB업무(금융상품 중개, 재무상담 등)를 병행하고 고용 및 복지서비스도 일부 제공한다. 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채무조정뿐 아니라 자금 지원, 고용·복지 연계, 종합 상담 등 서비스를 한자리에서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 창구”라며 “이를 위해 각 참여기관이 합동 조직으로 운영하며 상담 인력과 기타 지원 인력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심리 상담도 청각장애인 사례자 이 씨는 지인의 소개로 통합지원센터를 알게 됐다. 이후 채무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화통역사를 대동하고 상담 창구를 찾았다. 이 씨는 상담을 통해 채무조정 신청을 하면 중증장애 지원자로 이자채권은 물론 원금도 상각 채권으로 최고 70%, 일반채권도 30% 감면을 통해 8년간 월 10만 원 내외로 상환 가능할 수 있음을 안내받았다. 통합지원센터는 상담 중 이 씨가 기초생활 수급에서 제외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판단해 센터 내 서민금융진흥원 상담 창구에서 복지 상담을 받을 수 있게 연계했다. 서민금융진흥원 종합상담사는 이 씨가 기초수급대상자임을 확인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거주지 주민센터에 범정부 시스템을 통해 생계급여를 신청했다. 아울러 이 씨가 지인의 집에 거주하는 등 주거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파악해 주거급여도 신청했다. 사례자 박 씨 또한 지인의 소개로 ‘햇살론17’을 알게 됐다. 햇살론17은 신용등급이 낮아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최저 신용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대안상품이다. 박 씨는 ‘나도 대출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통합지원센터 문을 두드렸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연계한 상담 결과 박 씨의 신용등급과 소득으로 700만 원의 보증 한도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이율이 가장 높은 대부업 채무 700만 원에 대한 상환 안내도 이뤄졌다. 이어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을 통해 현금서비스, 캐피털 대출 등 기존 대출 건에 대한 채무조정 권유도 받았다. 취업 사기를 당해 채무 독촉에 시달리던 사례자 김 씨는 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신용회복위원회의 미취업청년층 채무조정을 받았다. 아울러 취업 사기를 당할 때 숙박시설에 감금됐던 충격으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김 씨를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심리 상담도 이뤄졌다. 또 상담사는 김 씨의 상황이 좋아지자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연계해 취업 지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 전국 47곳 서민금융 네트워크 구축 2014년 11월 경기 부천에 처음 문을 연 통합지원센터는 현재 전국 47곳에 서민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한 36개 생활권과 특별재난지역에 서민금융 상담 인력을 상근 파견해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정책 서민금융상품 및 은행, 저축은행 등 59개 금융회사의 약 180개 상품 중 맞춤형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서민 맞춤 대출 연계 실적은 제도 개선과 홍보 강화 등 효과에 힘입어 2020년 같은 기간 대비 증가했다. 정책 서민금융뿐 아니라 민간 중금리와 비교했을 때 낮은 금리 대출로 연계함으로써 서민들의 이자 비용 부담은 줄었다.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연계 대출 평균금리는 2020년 동기 대비 낮아졌다. 통합지원센터는 서민들이 재무적인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 예방 교육, 맞춤형 현장지원 및 체계적인 사후관리에 이르는 서민금융 PB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경찰·군인 등 국가·공공단체와 외식업 등 직능단체, 대학교와 연계해 사전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재무적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통합지원센터 중심의 지역밀착형 협의체를 통해 이용자 상황에 맞는 맞춤형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원 후에도 전문 상담을 통해 시중은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상담 및 이용 안내 ○ 전화 상담 - 서민금융통합콜센터 대표번호: 1397 - 운영시간: (평일) 09:00~18:00, (야간 상담) 18:00~20:00 * 야간 상담은 종합 상담에 한해 가능합니다. ○ 방문 상담 - 신분증 지참 후 가까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방문 - 운영시간: 평일 09:00~18:00, 토·일요일 및 공휴일 미운영 주간 정책정보지 <공감> 짧은 글 긴 여운 한국 갯벌, 세계자연유산 꽃으로 피어나다 지난 7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한국의 갯벌은 보성-순천 갯벌, 신안 갯벌, 고창 갯벌, 서천 갯벌 등 네 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입니다. 신안 갯벌이 1,100㎢로 가장 넓고, 나머지 갯벌의 면적은 각각 60㎢ 안팎입니다. 모두 습지보호 지역으로, 일부는 람사르 습지(전 세계를 대상으로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협회가 지정·등록해 보호하는 습지)입니다. 갯벌은 우리나라의 열다섯 번째 세계유산이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은 두 번째 자연유산입니다. 등재에 앞서 갯벌은 “47종의 고유종과 5종의 멸종 위기 해양무척추동물을 부양하고 있고, 2,15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등 세계유산 등재기준 중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자연 서식지’의 가능성이 있다”는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갯벌은 조류로 운반되어 온 미세한 흙이 파도가 잔잔한 해안에 쌓여 생기는 퇴적 지형입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지요. ‘자연의 콩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노폐물을 걸러주는 콩팥처럼 오염된 바다를 정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소금기가 있는 곳에서 사는 염색식물이 자생하는 지역이고, 철새와 어패류의 서식지입니다.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량과 흡수량은 약 60만 톤에 달합니다. 특히 한국의 갯벌은 동아시아와 대양주 철새 이동로의 핵심 기착지입니다. 갯벌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펄 갯벌은 입자가 매우 곱고 지반이 물러서 발이 깊게 빠집니다. 이곳에 사는 갯지렁이가 신선한 바닷물을 펄 안쪽까지 순환시킵니다. 모래 갯벌은 대부분 모래로 이뤄진 갯벌로, 입자 사이의 결합이 단단하지 않아 파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이곳 생물은 파도의 저항을 줄이고 뿔로 땅에 몸을 고정하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혼합 갯벌은 펄과 모래, 작은 돌이 고루 섞인 갯벌입니다. 다양한 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지요. 전남 순천만 갯벌은 금강에서 시작한 갯벌 퇴적물의 마지막 장소입니다. 멸종 위기 철새들이 가장 많이 월동하는 서식지이자 기착지로, 이곳에는 세계적인 희귀조류 48종을 포함한 총 252종 등 연간 10만여 마리가 서식합니다. 겨울이면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노랑부리저어새 등 다양한 물새들이 월동합니다. 봄·가을에는 민물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등 수많은 도요물떼새들이 시베리아와 호주 간 이동 경로상 중간기착지로 이용합니다. 순천만을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은 대단합니다. 순천만 주변의 환경오염시설을 철거하고 주변 농경지의 전봇대 282개와 전선을 제거해 철새들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순천만 갯벌과 함께 묶인 전남 보성 갯벌은 20개의 섬 주변에 곱고 미세한 퇴적물이 집적된 곳입니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로, 순천만 갯벌과 함께 2006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습니다. 세계 5대 갯벌로 불리는 전남 신안 갯벌은 한국 전체 갯벌 면적의 15%를 차지합니다. 많은 섬과 섬들 사이를 지나는 크고 작은 조수로 그리고 넓은 갯벌이 섬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최대 40m 깊이의 펄 갯벌, 펄 갯벌 위의 특이 모래퇴적체 등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들을 가집니다. 이곳의 양식장은 갯벌의 정화작용으로 인해 늘 좋은 품질을 자랑합니다. 국내 최대이자 최초의 갯벌 생태 교육공간인 신안갯벌센터도 있습니다. 전북 고창 갯벌은 2010년 람사르 갯벌 습지로 지정됐습니다. 급경사 암반 해안을 따라 갯벌과 섬이 분포한 갯벌입니다. 해리면 모래 갯벌, 심원면의 혼합 갯벌, 부안면의 펄 갯벌 등 다양한 갯벌 퇴적양상을 보입니다. 특히 폭풍모래 퇴적체인 쉐니어(해안을 따라 모래 혹은 조개껍질 등이 쌓여 만들어진 언덕)가 형성돼 지형·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황새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어요. 충남 서천 갯벌은 해안선을 따라 72.5km에 펼쳐져 있습니다.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하구 갯벌부터 모래 갯벌, 펄 갯벌, 혼합 갯벌, 자갈 갯벌 등 지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까워 많은 관광객이 갯벌을 체험하고자 방문합니다. 이곳은 넓적부리도요 등 바닷새 23종 30만 4,000여 개체의 서식지입니다. 풍부한 생태계의 보고이며 다양한 형태를 지닌 갯벌. 보존 가치가 높지만 수십 년간 개발이라는 이유로 많이 훼손됐습니다. 하지만 갯벌은 생물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에서 어업 활동을 하는 생활 터전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으로써 두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완충시킵니다. 홍수 때에는 순간적으로 높아지는 물의 수위를 낮춰 육지 피해를 감소시킵니다. 연안 식물과 퇴적물을 통해 탄소 또한 빠르게 흡수하지요.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갯벌 1㎢당 경제적 가치는 총 63억 원에 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맨발로 갯벌 위를 걸어보세요. 갯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옆으로 부지런히 걷는 게, 위로 솟구쳤다 빠져들어 가는 조개, 펄떡펄떡 뛰는 망둥이를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날 겁니다. 갯벌 탐사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관련 생태전시관을 가보는 것도 좋겠지요. 철새의 대이동도 벅찬 감동을 줄 것입니다. 김수정 기자 재활과 건강 손이 찌릿찌릿, 심각한 병은 아닐까? 손으로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들거나 목을 오래 숙이다 보면 한쪽 손이 저리고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밤에 누우면 더욱 저려와 잠을 설치거나 손을 털기도 한다. 혈액순환을 개선하면 나아질까 싶어 따뜻한 찜질을 하고 약을 먹어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이럴 때는 어딘가 신경이 눌렸을 가능성이 크다. 원인이 매우 다양해 초기에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을 찾게 되는 몇 가지 흔한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부터 넷째 손가락 중 몇 개가 저리다면 손목터널(손목굴, 수근관)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손목을 꺾은 자세로 무거운 것을 자주 들거나 오래 사용하면 손목터널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지고, 정중신경과 주위 미세혈관을 압박해 손이 저리게 된다. 손목을 많이 써서 염증(건초염)이 생긴 힘줄이 손목터널 안에서 부어도 정중신경을 압박할 수 있다. 손바닥 아래 손목을 세게 여러 번 두드리거나 손목을 끝까지 1분 정도 구부렸을 때 손 저림이 심해진다면 이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에서는 정중신경이 담당하지 않는 새끼손가락은 절대 저리지 않다는 점이 감별 포인트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재활의학과 또는 신경과를 방문해 약한 전기자극으로 말초신경 길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신경전도검사로 진단할 수 있다. 신경초음파검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경미할 때에는 스테로이드 주사로도 몇 달간 손 저림이 완화된다. 심할 때는 손목터널의 지붕 역할을 하는 인대를 수술해 손목터널 압력을 낮추는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만약 엄지손가락 쪽 손바닥 근육이 위축돼 얇아질 정도로 내버려 두면, 정중신경이 많이 손상돼 수술해도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주관절터널증후군이 있다. 이 증상은 일상생활에서 팔꿈치를 끝까지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많이 반복하는 경우에 잘 생긴다. 팔꿈치 안쪽을 지나가는 척골신경이 눌리면서 새끼손가락이나 넷째 손가락(약지)이 저리고, 심하면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척골신경이 지나가는 부위, 즉 팔꿈치 안쪽의 튀어나온 뼈 뒤쪽을 톡톡 두드릴 때 손가락이 저리다면 의심해볼 수 있다. 드물게 팔꿈치의 주관절터널이 아닌 손목 부위에서 척골신경이 눌려도 비슷한 손가락 부위가 저리게 된다. 둘 다 신경전도검사로 진단하며, 눌린 정도가 심하면 수술로 풀어줄 수 있다. 이러한 질환과 꼭 구별해야 하는 것이 경추(목)디스크 탈출증으로 인한 신경통이다. 손뿐 아니라 팔까지 뻗쳐서 저리다면 경추가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목을 숙인 자세로 휴대전화나 텔레비전 혹은 책을 오랫동안 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며 오래 일하는 경우 목디스크 안의 압력이 높아져 디스크가 찢어지게 된다. 이는 생활습관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흘러나오고 튀어나온 디스크가 경추신경을 건드리면 신경이 담당하는 부위의 손이나 팔이 저리게 되는 것이다. 손 저림뿐 아니라 손을 꽉 쥐는 힘이나 팔로 무거운 물건을 드는 힘까지 점점 떨어진다면 디스크가 경추신경을 많이 누른 상태이므로 병원을 찾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디스크 탈출증으로 손까지 저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소염진통제나 신경통약으로 통증을 가라앉혀야 한다. 잘 낫지 않으면 경추에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염증이 많이 줄어든다. 앉거나 서서 양팔을 뒤로 한 채 가슴을 펴고 목을 뒤로 젖히는 운동을 하면 디스크 안의 압력이 줄어들고 튀어나왔던 디스크도 서서히 흡수된다. 이러한 운동을 매일 수시로 꾸준히 하면서 목을 꼿꼿이 들고 다니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반면 턱을 당기는 동작이나 목 근육을 단련하려고 힘을 세게 주는 운동은 디스크 압력을 높일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찢어진 디스크는 서서히 아물어 치유될 수 있으므로 급히 수술할 필요는 없다. 오랜 당뇨병으로 인해 말초신경합병증이 생긴 때에도 손이 저릴 수 있다. 양쪽 발가락까지 함께 저리는 경우도 많다. 앞서 살펴본 손목터널증후군도 당뇨병이 있는 경우에 훨씬 잘 생기며,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과 동반할 때가 많다. 역시 신경전도검사로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도 혈당을 조절하면 말초신경병증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손 저림의 원인을 말초신경 문제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추위에 노출되거나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손가락이 창백해지며 통증이 심해진다면 레이노병과 같은 말초혈액순환장애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뇌졸중에서는 손 저림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만, 편마비처럼 같은 쪽 팔다리까지 저리고 힘이 빠진다면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응급상황일 수 있다. 손 저림의 여러 원인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증상이 계속되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손 저림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받아 손 저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범재원 교수(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이동우의 음악칼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덧문을 아무리 닫아보아도 흐려진 눈앞이 시리도록 날리는 기억들 어느샌가 아물어버린 고백에 덧난 그 겨울의 추억 아, 힘겹게 살아간 기억 이제는 뒤돌아 갔으니 바람은 또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내 맘에 덧댄 바람에 창 닫아보아도 흐려진 두 눈이 모질게 시리도록 떠나가지 않는 그대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 루시드 폴, ‘바람 어디서 부는지’ 전문 그날 ○○백화점에는 예상대로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휴일이었으니까요. 저는 당시 대학생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그날 엄마와 누나를 백화점 1층에서 만나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던 것,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제가 내렸을 땐 20년이 지나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습니다. 서둘러 타려는 엄마와 저를 향해 누나가 말했습니다. “그거 타면 안 될 것 같은데? 우리 그냥 다른 거 타자.” 엄마와 저는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되물을 겨를도 없이 문안으로 이미 들어섰습니다. 누나도 엉거주춤 뒤따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만원 버스 같았습니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앞에서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모두 내려주세요.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빨리 다 내려주세요!” 아저씨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저씨의 가슴과 등에는 ‘저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라고 적힌 책받침 크기의 판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흰 지팡이도 들고 계셨고요.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셨는지 같이 타고 있던 한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습니다. 한 사람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좁은 실내는 이미 매우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분위기로 숨쉬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아저씨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향해 또 한 번 고함을 쳤으니까요. “울지 마! 뚝! 이번에 문 열리면 다들 내리세요!” 아기는 겁에 질려 더 크게 울었습니다. 곧 문이 열렸지만 야속하게도 아무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어서 자신이 내릴 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요. 물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테죠. 익숙지 못한 상황에 모두 재빠르고 자연스러운 대처를 못한 것입니다. 불특정한 다수가 좁은 공간에서 직면한 매우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 그 누구도 시비를 가리거나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빨리 문이 열려 이곳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는 심정이었죠. 저는 그 순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만 하세요! 아기가 울잖아요! 잠깐이면 되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아저씨는 크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겁고 혼탁한 스트레스 저장고가 되어버렸습니다. 각자의 머리 위로 뜬 말풍선에는 모두 같은 말, 이를테면 ‘오늘 재수 없네’가 떠 있었죠. 그로부터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 손에는 흰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제 품에는 세 살 난 딸이 안겨 있었습니다. 제 팔을 붙든 엄마와 ○○백화점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장애인과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든 아르바이트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안내문을 큰소리로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은 곧 비장애인으로 가득 들어찼습니다. 이상했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어머니께서 모두 들으라는 듯한 의도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에이 참! 이게 무슨 장애인 전용이야? 저 학생이 알려주는데도 다들 그냥 타버리네?” 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뱉어낸 불만과 푸념의 탁한 공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승객 사이를 순식간에 파고들었습니다. 어색한 순간은 아무리 순간이어도 참 길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적막에 간간이 섞인 누군가의 낮은 헛기침은 어떻게든 이 힘든 상황을 깨보려는 심리의 반사적 행동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어서 펼쳐지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공동 운명체였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염원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층이었을까요. 문이 열리자 몇 분이 탈출하고 또 몇 분이 들어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의 안내를 받은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타고 있는 사람이 다 장애인인가요? 빨리 문 닫아요! 장애인 없으면 그냥 모두 타게 해주면 되지.” 이미 타고 있던 승객 모두는 아마 제 어머니에게 무언의 간절한 바람을 가졌을 겁니다. ‘할머니,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라고요.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왜 적중할 때가 더 많을까요. 안 그래도 불편한 심기에 직격탄을 맞은 거죠. “다들 내리세요! 엘리베이터 문에도 써 놨고 아르바이트 학생이 널빤지까지 들고 서 있잖아요? 협조 좀 해줘야죠. 이래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못 되는 거 아닙니까? 그냥 다들 내리세요!” 그 아주머니도 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 있으면 장애인을 타게 하고, 없으면 다들 그냥 타면 되지 뭘 그래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빈 엘리베이터만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도 문이 열릴 때마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안내문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스럽게 사람들은 오르내렸습니다. 백화점이 만약 100층짜리 건물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백화점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진 20년간의 촌극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감과 이해 혹은 어떤 슬픔과 분노가 생겨나진 않으신지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저는 어머니가 쇼핑하는 동안 구석 의자에 앉았습니다. 20년 전의 일과 좀 전의 일이 교차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너무나 많은 시각과 관점이 제 머리와 마음 안에서 열 명이 넘는 또 다른 이동우를 만들어냈습니다. 고백하건대 비장애인이던 20대의 이동우는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이 참 싫었습니다. 아기에게 호통치는 모습만 보고 그분의 전부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의 관리 소홀에도 불만을 품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아저씨는 앞도 안 보이면서 왜 이리 붐비는 백화점에 들어온 걸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 왜 굳이 백화점에 온 거지? 뭘 볼 수 있어야 쇼핑도 할 수 있을 텐데’ 하며 화를 냈습니다. 훗날 그분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까마득한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40대의 이동우는 흰 지팡이를 든 채 그 승강기 안에 있었습니다. 백화점의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와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아기 엄마와 아기 또 어머니와 아르바이트 학생, 이동우…. 이들의 관계 속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함수와 역학이 내포돼 있습니다. 단순 시비를 가릴 수 없는, 매우 깊은 삶의 본질적 핵심이지요. 실로 간단치가 않습니다. 정책과 사회적 규범, 도덕, 양심, 이기와 모순 등의 철학적 사유가 다분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토록 어려운 문제와 그에 못지않은 생존의 문제가 상충하는 지점일진대 어찌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흑백 논리나 이분법적 사고의 접근은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인지가 생겨나야 하고 그 위에 비로소 인식이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요?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20년 전 일을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한마디 하시곤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방문이 딸깍하고 닫히는 소리는 ‘사는 건 원래 그런 것’이라는 삶의 정의에 마침표를 찍는 소리 같았습니다. 더는 어떤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최종 판단 같아 기운이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이 음악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서 부는지’에는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라는 후렴구가 반복됩니다. 쓸쓸한 가을입니다만 쓸쓸한 감정이 제 생각마저 교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이동우가 만났던 어느 시각장애인 아저씨처럼 크고 긴 한숨을 내쉬어봅니다. 이동우(가수 겸 코미디언) 살며 생각하며 진정한 장애인식개선 최근 여러 장애인 복지관에서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가 ‘장애인식개선’이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모자라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다’ 이런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그런데 장애인식개선이 필요한 사업일 수 있지만, 기관의 주도로 이뤄지는 인식개선 사업은 장애인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비시각장애인과 교류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나는 ‘과연 저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물음표를 머릿속 가득 채우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질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물음표는 내가 자주 만나는 비장애인에게서 싹 사라져 버린다. 친한 사람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어떤 도움을 청하든 스스럼없이 나를 대한다. 익숙한 분위기에서 아주 가끔 ‘내가 그들과 다른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얼마 전에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온 비장애인과 재회했다. 당시 그는 여행 일행 중 몇 안 되는 남성이었다. 익숙한 공간이 아니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나에게 그분은 동반자 그 이상이었다. 2박 3일 동안 주요 여행 일정뿐 아니라 화장실, 온천까지 함께 하면서 나의 모든 걸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린 정말 편한 사이가 됐다. 그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많은 고깃집에서 말이다. 고깃집에서 시각장애인은 식사하기 불편한 상황에 자주 맞닥뜨린다. 그는 내가 먹기 편하게 앞 접시에 고기를 놔주는 건 기본이고, 쌈이 귀찮아 잘 먹지 않는 나에게 쌈을 싸서 손에 살며시 쥐여주기도 했다. 정말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는 나를 ‘도움이 필요한 가여운 중증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정말 편한 동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에는 비장애인이 거리로 나와 시각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불특정 다수에게 캠페인을 노출해 인식개선을 꾀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일반화할 경우 일부 시각장애인이 불편을 느낄 소지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저시력인이나 전맹에게 적용되는 에티켓을 적용하면 예의에 어긋날 수도 있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흰 지팡이로 보행하는 방법을 인식개선의 도구로 사용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단순한 장애체험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불편한 생활을 느끼면 오히려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많은 장애인이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엔 직장 내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돼 장애인 강사가 여러 기관을 방문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강사마다 처한 환경이나 강의 방식이 다양하다 보니 자칫 강사의 삶이 그대로 강의에 녹아들고, 그 강사의 생각이 대표성을 갖게 된다. ‘장애인은 정말 힘들구나’ ‘와, 저 사람 대단한걸’ ‘저 사람 존경스럽다’ 등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각인할 우려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이 오히려 더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몇 해 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일상 체험, SNS로 함께해요’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캠페인은 안대를 착용하고 식사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다음 해시태그로 ‘눈 가리고 한 끼’를 걸어주면 되는 방식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캠페인은 장애인식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캠페인의 파급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합회가 제작한 홍보 영상 때문이다. 영상은 ‘짜장면 블라인드 테스트’ 상황에서 시민평가단이 안대를 착용하고 짜장면 맛을 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민평가단은 당황스러워하면서 여기저기 짜장면을 흘리고 묻히며 먹는다. 이후 짜장면 맛을 묻자 “맛보다 짜장면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게 힘들었다”고 대답한다. 안대를 벗은 뒤에는 평생 안대를 끼고 먹는 것과 같은 시각장애인의 식사 영상을 보면서 시민평가단은 눈시울을 붉힌다.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자는 취지의 영상은 ‘눈 가리고 한 끼 도전을 SNS에 올려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이 한 끼 식사 캠페인을 통해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시각장애인이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 매우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장애인 입장에서는 안대를 쓰고 한 끼 식사를 어렵게 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장애인 친구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장애인식개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저 장애인을 한낱 가십거리로 치부하는 SNS 캠페인에 나는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 장애인식개선에 도움이 될까. 한때 이야기를 나누며 청중을 만나는 토크 콘서트가 유행했다. 그래서 일부 장애인이 가벼운 방식으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장애인식개선이라는 딱딱한 단어 대신 ‘장애 공감’이라는 부드러운 어휘를 사용하고 재미있게 장애인의 이야기를 풀어내 호응을 얻었다. ‘장애 공감’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별다를 거 없이 산다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토크 콘서트에 참여한 비장애인의 생각을 다 알 순 없었지만,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인식은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최근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 안무를 이용한 뮤직비디오 형태의 영상으로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알린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또 구독자 20여만 명을 보유한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느끼는 불편함을 브이로그(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 형식으로 제작해 자연스러운 장애인식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장애인식개선은 이처럼 진화해 왔다. ‘좀 더 간결하게’ ‘좀 더 자연스럽게’가 최근 장애인식개선의 트렌드다. 그러나 언제까지 장애인식개선만 외칠 수는 없는 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굳이 장애인식개선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권순철(칼럼니스트) 문화재 이야기 동국정운(국보 제142호)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해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이다.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에 관한 책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됐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돼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된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 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다. 「동국정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에서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서도 기본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