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62호 2021. 4 발행: 문화체육관광부 www.mcst.go.kr 발행인: 황희 발행일: 2021. 4. 1. 제작협력: (주)도서출판 점자 www.kbraille.net 문의: 02-3426-7212, 044-203-3016 음성 사서함: 02-2092-9000 (7511) 이 책자에 수록된 내용은 정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차 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 위한 ‘색 구분 라벨’ 만든 박진 노뮤직노라이프 대표 4 알짬 정보: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편의 강화된 도로 설계지침 마련 외 15 공감 정책: 소외된 곳 보듬어온 40년, 장애인 삶에 더 가까이 28 공감 현장: 코로나19 예방접종 전후 이것만은 꼭 지키자 42 짧은 글 긴 여운: 희망의 메시지 품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51 재활과 건강: 심근경색 이후 운동 및 심장 재활 60 이동우의 음악칼럼: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69 살며 생각하며: 나는 장애인이다 85 문화재 이야기: 창경궁(사적 제123호) 94 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 위한 ‘색 구분 라벨’ 만든 박진 노뮤직노라이프 대표 “누구나 자유롭게 색상 고르고 누릴 수 있기를” 꽃바람 부는 4월은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동시에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옷 고르기는 퍽 어려운 과제. 각자만의 노하우로 색을 구분하고 옷을 선택하지만 ‘색’에 대한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박진 노뮤직노라이프 대표는 시각장애인의 이런 고민을 덜어주고자 ‘색 구분 라벨’을 개발했다. 촉각화된 오선지 악보의 음계로 옷의 색깔을 구분 짓는 라벨이다. Q. ‘색 구분 라벨’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옷 왼편 아래에 있는 오선지 모양의 직사각형 라벨을 말합니다. 오선지에 표시된 음표 위치를 손으로 짚어 시각장애인이 옷 색깔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높은음자리표를 기준으로 낮은 ‘레’부터 높은 ‘레’까지 총 열한 가지 음에 무지개 일곱 색과 한국인이 즐겨 입는 무채색인 흰색, 검은색, 밝은 회색, 어두운 회색을 더했습니다. Q. 왜 이 라벨을 만들게 되었나요? A. 우연히 시각장애인 한 분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제 직업이 패션디자이너라고 밝혔더니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옷 색깔을 구분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라며 경험담을 전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간 많은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지향하고자 애써왔거든요. 정작 시각장애인의 입장은 담아내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당장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시각장애인에 대해 아는 것도, 시장에 뛰어들 용기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정전이 됐습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불을 켰는데 속옷을 거꾸로 입고 있더군요. 보이지 않아 실수했다는 머쓱함 이전에 시각장애인은 옷의 색상뿐 아니라 앞뒤 구별도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죠. 뭔가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길로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프로젝트를 설명한 뒤 개발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Q.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습니다. A.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보니 저마다의 요령으로 옷 색깔을 구별하더라고요. 한 가지 종류의 셔츠와 바지만 사는 분, 옷 안쪽 라벨을 빨간색 계열은 세모, 파란색 계열은 사각형처럼 특정 모양으로 잘라내는 분, 옷장 안에 위치를 정해두고 구별하는 분 등 다양했어요. 앞을 볼 수 없으니 옷장 정리가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하나같이 옷장이나 서랍이 깔끔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풀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분들의 노하우 가운데 색깔마다 라벨 형태를 달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샘플을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촉감에 민감해 옷을 사면 라벨부터 전부 떼어버린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말을 듣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색상뿐 아니라 사이즈, 세탁 방법 등도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생겼고요. 재차 시각장애인의 의견을 모은 결과, 정보가 너무 많으면 인식하는 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거니와, 색상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점자로 표현할 생각은 안 해봤나요? A. 개발 초기에는 점자를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후천적 시각장애인 중에는 점자를 어려워하는 분이 꽤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여섯 개의 점을 사용한다는 것만 같을 뿐, 한글과 영어 등의 점자 표기법이 다르기에 오히려 인지 장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쉽고 간단한 오선지 음계를 떠올렸습니다. 오선지의 가장 아래에 표시하면 흰색, 그다음 자리는 옅은 회색, 그 위는 빨간색…. 이런 식으로 위치에 따라 색상을 표시했습니다. 색 구분 라벨이 들어간 브랜드의 정식 명칭은 ‘터치더컬러(touch the color)’입니다. 열한 가지 색상의 긴소매와 반소매 라운드 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Q. 시각장애인의 반응은 어떤가요? A.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습니다. “셔츠 하단에 색 구분 라벨을 부착하면 옷걸이에 걸린 상태에서도 밑단을 만져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장례식장에 컬러풀한 옷을 입고 가는 실수는 피하게 됐다” “열한 가지 색에 한정된 것이 아쉽지만, 혼자만의 코디가 가능해졌다” 등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패션디자이너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시장성이 떨어진다며 주변의 우려가 컸거든요. 하지만 이런 작은 도전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패션 소외계층을 위한 연구나 지원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Q. 기업명이 ‘노뮤직노라이프’입니다. A. 노뮤직노라이프는 패션과 출판 분야에서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하고자 만든 브랜드입니다. 가령, 착용감에 신경을 쓴 양말은 리듬감이 부드러운 재즈를 모티브로 제작됐고, 타이트하면서 반짝거리는 셔츠는 록을 모티브로 태어났습니다. 서울시에 등록된 LP바 스무 곳을 취재해 펴낸 <내가 몰랐던 서울, 아날로그 음악 생활 LP바 가이드북>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으로도 제작할 계획입니다. 책 판매 수익금으로 오디오북 작업을 진행한 뒤, 시각장애인과 무상으로 공유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시각장애인 직원을 채용해 터치더컬러 브랜드 제품을 직접 착용하며 홍보하는 영상 제작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진행자가 직접 옷을 입어보며 질감이나 어울리는 코디 등을 알리는 내용이죠. 앞으로 색 구분 라벨 체계가 패션계에 완전히 자리 잡아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색상을 고르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알짬 정보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편의 강화된 도로 설계지침 마련 외 01.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편의 강화된 도로 설계지침 마련 국토교통부가 ‘사람중심도로 설계지침’ 제정안을 마련했다. 이는 도시지역 도로에서 저속통행을 유도하고,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보행자 우선도로를 조성하며, 고령자가 안전하게 보행 및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사고 원인 사전 제거, 초고령사회 대비 등 사람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한 것이 특징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보행자가 많은 이면도로 등은 보행자 우선도로로 계획해 시속 30km 이하로 주행하도록 설계한다. 휠체어 이용자, 시각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통행 불편을 줄이고 안전한 보행환경을 위해 횡단보도 턱 낮추기, 연석 경사로 및 충분한 점자 블록 등을 설치한다. 고령자를 위한 바닥형 보행 신호등, 횡단보도 대기 쉼터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고령자의 느린 보행속도로 인해 횡단 시간 부족이 예상되는 횡단보도는 중앙보행섬을 설치한다. 도시지역 도로는 시속 50km 이하로 설계하도록 유도하고, 속도에 따라 지그재그 형태 도로, 고원식 횡단보도(과속방지턱 형태의 횡단보도) 등 교통정온화시설을 설치한다. 바퀴가 작은 개인형 이동수단이 안전하게 주행하도록 도로 접속부 경계석의 턱을 없애고, 원만하게 회전이 가능하도록 곡선부(커브길)의 회전반경은 크게 한다. 문의 044-201-3907 02. 경기도,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사업 참여기관 모집 경기도가 ‘2021년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한다. 이 사업은 경기도 내 장애인에게 장애 유형별, 지역사회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을 돕기 위한 것이다.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진행된다. 모집 대상은 장애인 일자리 창출·지원 관련 사업 수행이 가능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경기도 내 비영리법인과 단체, 사회복지법인,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관 등이다. 모집 분야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과 ‘(최)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 등 두 개 분야이며, 분야별 각 5개 기관을 모집한다. 문의 130-120 03. 교육부, 장애대학생 복지 우수대학에 원격수업기기 구입 지원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21년 장애대학생 원격수업 수강지원 사업 기본계획’을 통해 장애대학생 교육복지가 우수한 대학에 원격수업용 보조공학기기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이번 사업은 장애대학생의 비대면 수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설된 것으로, 지난해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결과 최우수, 우수 등급을 받은 107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다. 우수 이상 등급을 받은 대학이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 지체장애인용 한손용 키보드 등 장애 유형별 원격수업 보조공학기기를 구비할 수 있도록 한 곳당 평균 1,500만 원을 지원한다. 문의 110 04. 시각장애 청년 위한 문화예술 유튜브 ‘오디아(AudiA)’ 비영리 사단법인 ‘오늘은’이 소리로 만나는 문화예술 유튜브 채널 ‘오디아(AudiA)’를 선보였다. 오디아(AudiA)는 오디오(Audio)와 아트(Art)의 합성어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 기반의 문화예술 콘텐츠 채널이다. 각 콘텐츠는 그림 해설과 그림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으로 구성돼 그림에 대한 지식과 청각적 관람을 유도한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시작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다양한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법인 관계자는 “오디아를 통해 시각장애 청년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의 02-6958-1960 05. 서울시, 장애인 휠체어 맞춤형 가방 제공 서울시가 휠체어 이용 장애인 1,500여 명에게 휠체어 보조케이스(백팩)를 지원한다. 휠체어 보조케이스 지원사업은 지난해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서울 거주 장애인 500명에게 지원한 사업이다. 외출할 때 휠체어에 맞는 가방이 없어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의 편익 증진을 위해 마련됐다. 휠체어 보조케이스는 모든 지퍼의 손잡이가 지체·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고리형으로 제작됐다. 올해는 서울시 4개 권역별 보조기기센터에서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접수받는다. 우편, 이메일, 팩스, 직접 방문 등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해 지원대상자를 선발한다. 문의 02-120 06. ‘2020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결과 발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전국 등록장애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4.2%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장애인의 체육활동이 위축되면서 생활체육 참여율 또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이 주로 운동하는 장소는 야외 등산로나 공원, 체육시설, 집안 순으로 조사됐다. 운동 목적은 건강 및 체력관리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재활운동, 여가활동 등이 뒤를 이었다. 건강 및 체력관리는 전년 대비 29.3% 늘어난 반면, 재활운동은 30.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장애인이 운동하기 위한 장벽이 여전히 높은 만큼,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확충’, ‘장애인스포츠강좌 지원 확대’, ‘장애인 생활체육 지도자 배치’ 등을 확대해 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든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의 044-203-3179 07. 중기부, 발달장애인 창업 지원 특화사업장 4곳 구축 중소벤처기업부가 4월 14일까지 발달장애인 가족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특화사업장 구축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모집한다. 발달장애인 특화사업장 구축사업은 창업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창업교육과 현장실습 시설, 창업 보육공간을 갖춘 곳이다. 발달장애인과 해당 가족에게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지난해 처음 실시돼 경북 안동시와 광주 광산구 2개 지역에 특화사업장이 구축 중이다. 자격요건은 건물 또는 부지의 무상임대가 가능하고 운영비 1억 5000만 원 매칭이 가능한 지자체여야 한다. 선정된 지자체에는 구축비 11억 원과 운영비 1억 5000만 원 등 총 12억 5000만 원이 지원된다. 선정은 서류평가, 현장실사, 발표평가를 거쳐 사업추진기반, 시설현황, 운영지원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문의 1357 08. 소방청, 취약계층 위한 맞춤형 구급서비스 소방청은 독거노인이나 중증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자 보건복지부 응급안전안심서비스 가입자에게도 맞춤형 구급서비스인 ‘119 안심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응급안전안심서비스란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가정에 감지기를 설치해 화재·가스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119에 신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동안은 응급안전안심서비스 가입자에게 응급상황이 생기면 119로 신고만 가능했지만, 이 서비스를 통해 구급대원이 출동할 때 대상자의 병력, 복용 약물 등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현장에서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고, 최적의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게 됐다. 소방청은 현재 10만 명을 119 안심콜 서비스에 등록했으며 내년까지 20만 명을 추가로 등록할 계획이다. 문의 044-205-7032 공감 정책 소외된 곳 보듬어온 40년, 장애인 삶에 더 가까이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올해로 41회째를 맞는다. 4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 발전사를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살펴봤다. ◇ 1981년, 장애인 복지 종합 법률 최초 제정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복지 종합 법률이 최초로 제정된 건 1981년이다. 그해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국가 주도로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시책과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법률 제정 이후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88년 8월에는 장애자복지대책위원회가 대통령 소속기구로 설치됐다. 장애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관련 서비스가 제공되고, 직업훈련 등 직업 재활 프로그램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1988년 성공적으로 열린 제8회 서울장애인올림픽(이하 올림픽)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수용 보호와 재활 시설을 현대화했다. 관련 투자는 1985년부터 확대됐고, 1987년까지 총 250억 원의 신규 투자가 이루어졌다. ‘장애인고용촉진법’ 등 관계 법령의 추가 제·개정 및 폐지 작업이 병행되면서 올림픽 유치 효과가 더욱 커지기도 했다. 당시 올림픽에는 61개국 4,319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선수단이 참여했다. 우리나라의 100만 장애인은 세계 무대 위 장애인의 활약을 보며 재활 의지를 다졌고, 장애인 복지, 인권 등 더 나은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는 장애인 정책과 제도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수용 보호와 재활 치료 지원 등 다소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유엔(UN)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선포하고, 1982년 ‘유엔 장애인 10년을 위한 세계행동계획’을 채택하면서 국내의 분위기도 점차 바뀌었다. 이전보다 장애인의 삶과 인권 등을 더 면밀하게 살피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 1990년대, 생계비·고용 보장 등 지원 본격화 1989년 12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된 것도 장애인 정책 발전사에 있어 큰 사건 중 하나다. 개정된 법은 지체부자유자를 ‘지체장애인’으로, 정신박약을 ‘정신지체’로 바꾸었고, 국가와 공공의 책임도 분명히 했다. 또한 장애인 편의시설에 관한 내용도 명시했다.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건축물과 이동수단에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부터는 장애인 생계비 지급과 고용 보장 등의 지원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 중증장애인 생계보조수당제도, 1991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도는 장애인의 자립과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특히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 2000년대, 인권과 권리 보장 등에 방점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전까지 정책들이 생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원 등이 중심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더 확장한 개념의 정책이 구현됐다. 이는 장애인의 생계 보장을 넘어 더 다양하고, 가치 있는, 고차원적인 의미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일어난 변화이기도 하다. 1988년 5개로 나뉘어 있던 장애 유형은 2000년부터 15개 유형으로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2007년 4월 10일에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 보장의 주춧돌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이 법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7년에는 활동보조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는 장애인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 등을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다. ◇ 2019년, 숙원이었던 ‘장애등급제 폐지’ 2019년에는 숙원이었던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다.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심사를 바탕으로 장애인을 1~6등급으로 구분하는 제도였다. 등급에 따라 각종 지원이 차등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제도가 장애인의 개별적인 요구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됐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장애인 관련 첫 번째 공약이기도 했다. 문재인정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국정과제로 채택했고, 장애인 단체 등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관계부처 관련 법령 정비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19년 7월 1일부터 장애등급제는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1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핵심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만들자는 데 있다. 그동안의 지원 체계가 공급자 관점에서 정책개발·집행이 편리하도록 만들었다면, 새로운 지원 체계는 개개인의 요구와 환경을 더 세밀하게 고려해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 2021년, 총 5개 분야 20개 사업 개선·추진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가까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관련 정부 정책을 통해 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 보건 정책은 돌봄 지원, 소득·일자리 지원, 장애인 등록 개선, 건강생활 지원, 인권 강화 등 총 5개 분야 20개 사업을 개선·추진한다. 돌봄 지원 관련 대표 내용 중 하나가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의 확대·강화다. 활동 지원 서비스의 내실화를 위해 서비스 단가를 2020년 1만 3,500원에서 올해 1만 4,020원으로 올렸고, 대상자는 9만 1,000명에서 9만 9,000명으로 늘렸다. 장애인 활동 지원 수급자가 65세 이후 노인장기요양 수급자로 전환돼 급여가 감소한 경우에는 활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장애인 확진자가 안심하고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국립재활원에 ‘장애인전담병상’도 마련해 순차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과 생활치료센터 입원(입소)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 활동 지원사도 배치할 계획이다. ◇ 기초급여 인상, 학대 대응과 인식 개선 소득·일자리 관련 지원도 더해지고 있다. 올해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액은 기존 월 25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랐다. 장애인 일자리도 2020년 2만 2,396개에서 올해 2만 4,896개로 늘리기로 했다. 4월에는 장애 등록 대상 질환도 늘어난다. 장애 인정 필요성이 지속 제기된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CRPS)’ 등 10개 질환 대상으로 장애 인정 기준을 마련하고, 인정 질환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장애인 학대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힘쓸 계획이다. 장애인 학대 예방과 사후 지원 등을 위해 권익옹호기관과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도 올해 한 곳 확충해 총 18개소로 늘린다.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학대 문자·카카오톡 신고 서비스 채널도 개통한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 결과를 공표하고, 이수율 미달 기관에는 특별교육도 하기로 했다. 더불어 맞춤형 인식 개선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복지 법률이 제정된 지 40년이 지났다. 정부가 마련한 다양한 정책이 장애인의 더 나은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40년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주간 정책정보지 <공감> 공감 현장 코로나19 예방접종 전후 이것만은 꼭 지키자 지난 2월 26일부터 요양병원·요양시설 등의 만 65세 미만 입소자·종사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은 원활한 예방접종을 위해 관련 지침을 각 기관에 배포했다. 특히 접종 전후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이 있다. 추진단은 접종 대상자와 의료진에게 예방접종 전, 예방접종 시, 예방접종 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의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 예방접종 전 주의 사항 - 알레르기 병력 등 예진표에 기록 예방접종 하루 전, 대상자는 예약된 예방접종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고 건강한 몸 상태에서 반드시 의사의 예진을 받아야 한다. 장 세척제 등 약, 화장품, 음식, 다른 종류의 백신 접종 등에 대한 알레르기 병력이 있는 경우 예진표에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1차 접종 시 또는 코로나19 백신 구성 성분에 대한 아나필락시스 같은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 경우 접종을 받아서는 안 된다. 아나필락시스는 중증 알레르기 반응으로 쇼크, 호흡곤란, 의식 소실, 입술·입안의 부종, 몸 전체에 심한 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임신부와 소아·청소년은 예방접종 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임상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예방접종을 권장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별로 1·2차 예방접종 간격이 다르기 때문에 아스트라제네카는 8~12주, 화이자는 3주 간격을 준수해 같은 백신을 접종받도록 한다. 다른 감염병 예방접종은 코로나19 예방접종과 최소 14일 간격을 둬야 한다. ◇ 예방접종 후 주의 사항 - 15~30분 접종 기관에서 이상 반응 관찰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 발생 시 조치를 위해 모든 접종 완료자는 15~30분간 접종 기관에 머물러 이상 반응 발생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최소 15분간 관찰하되 이전에 다른 원인(약, 음식, 주사 행위 등)으로 중증 알레르기 경험이 있는 경우엔 반드시 30분간 관찰이 필요하다. 귀가 후에도 최소 3시간 이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접종 부위는 청결히 유지하고 접종 후 최소 3일간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고열이 있거나 평소와 다른 신체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고령자는 예방접종 후 증상 발생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권고한다. ◇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 - 심한 알레르기 반응 땐 의료기관 방문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으로 접종 부위 통증, 부기, 발적 등의 국소 반응이나 발열, 피로감, 두통, 근육통, 메스꺼움·구토 등의 전신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접종 후 흔히 나타나는 이상 반응은 대부분 3일 내 증상이 사라진다. 통증이나 부기는 차가운 수건을 접종 부위에 대고 근육통, 피로감 등 전신 반응이 발생했을 때는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알레르기 반응(두드러기나 발진, 얼굴이나 손 부기) 등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39℃ 이상 고열이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반응 증상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심해지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아나필락시스 등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면 즉시 119로 연락하거나 가까운 응급실을 찾아가야 한다. 이상 반응이 의심될 경우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https://nip.kdca.go.kr)의 ‘예방접종 후 건강상태 확인하기’에서 증상을 확인하고 대처법을 안내받을 수 있다. (접종 부위 통증, 부기, 오한, 발열, 메스꺼움, 피로감 등 경미한 이상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수일 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 - 피해 땐 진료비·간병비·장애일시보상금 등 지급 질병관리청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예방접종 후 불가피하게 발생한 이상 반응에 대해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으로 주소지 관할 보건소(시·군·구)에 신고된 접종받은 사람(또는 보호자)은 보상 신청 구비 서류를 갖춰 보건소에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보상 신청 후 120일 이내에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 보상 심의를 거쳐 보상을 결정한다.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은 진료비(본인부담금), 간병비(입원진료 시, 1일당 5만 원), 장애일시보상금, 사망일시보상금이 지급된다. 아울러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예방접종 이상 반응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코로나19 예방접종에 한해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 신청 기준을 기존 본인부담금 30만 원 이상에서 전액으로 확대 적용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안전한 예방접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안전 수칙을 준수해달라”며 “예방접종을 완료한 후에도 감염 및 전파 방지를 위해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 등 코로나19 감염예방 수칙을 계속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주간 정책정보지 <공감> 짧은 글 긴 여운 희망의 메시지 품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두고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극복한 대통령’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이라고 평가합니다.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는 금융개혁, 산업재건, 사회안전망 구축 등으로 ‘뉴딜 정책’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그려진 루스벨트는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장소에서 만났건, 만난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어떻든 간에 늘 이름을 기억하고 불렀는데요, 그는 재임 시절은 물론 퇴임한 후에도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안부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청소부, 요리사, 정원사에게도 말입니다. ‘온유’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루스벨트는 1882년 부유한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3층 집에 방이 35개 있었고, 가정교사를 둘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지만 지적 호기심이 대단해 학업에 열중했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뉴욕주 상임위원으로, 1913년부터 1920년까지 미 해군 차관보를 지냈으며, 1920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에 오릅니다. 선거에 패하며 부통령이 되지 못한 루스벨트에게 큰 시련이 닥친 건 이듬해였습니다. 어느 여름날 별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 갑작스레 척수성 소아마비(소아마비를 앓기엔 늦은 나이였기에 다른 병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를 앓게 된 겁니다. 곧 나아지겠거니 생각했지만 점점 상황이 악화됐고, 결국 다리에 쇠붙이를 고정하고 휠체어를 타게 됐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도, 걸음을 옮길 수도 없었죠. 그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실의에 빠졌습니다. 온종일 방에만 갇혀 지냈습니다.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우가 그친 어느 날, 아내는 루스벨트의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나섰습니다. “비가 그리도 퍼붓더니 이처럼 날이 갰군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비록 몸이 불편해졌지만 당신 자신이 달라지지는 않았잖아요. 조금 더 힘을 내요.”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는 머리를 감싸 쥐며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구의 몸이 된 걸요. 당신은 이런 나를 여전히 사랑하오?” “당연하죠! 내가 지금껏 당신의 다리만 사랑한 줄 알았어요?” 루스벨트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4~5년 동안 재활·운동 치료에 전념한 결과, 완벽하진 않지만 부축 없이 걸을 정도가 됐습니다. 46세에 뉴욕 주지사가 되면서 정계에 복귀했고,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명언을 남깁니다. 또한 아래 같은 말도 남겨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얻은 것들은 평상시보다 훨씬 압박이 강한 상황에서 쟁취된 것입니다. 두려움과 고통이 자극할 때 발전은 불가피해집니다.” “밧줄 끝까지 갔을 때는 매듭을 묶고 매달려라.” “자유와 평범한 품위를 지니고 더불어 살아나갈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이들은 “루스벨트의 장애는 자신처럼 고통받는 국민과 같은 처지로 만들었다. 이 시련으로 그는 국민을 생각하고 존경하는 사려 깊은 지도자가 됐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서민의 편에 서려 노력했습니다. 시장 논리에 의해 기득권이 주도권을 쥐는 현실을 타파하고자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인종이 다른 사람 등 사회적 약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과 소통에도 소홀치 않았는데, 의회와 수많은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고 주 1.6회꼴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라디오 연설을 30여 차례 이상 열어 국민에게 정책을 직접 설명했습니다. 루스벨트는 재선과 3선에 성공한 후 4선에도 성공했지만, 별장에서 쉬던 중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말을 남긴 채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후 ‘대통령 3선 출마 금지법’이 제정돼,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으로 남았습니다. 루스벨트는 자신이 나약한 모습으로 비칠까 우려해 가급적 목발이나 휠체어를 탄 사진은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강연할 때에는 스스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고, 자신의 몸을 지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그것을 붙들고 연설을 했습니다. 루스벨트의 강한 의지를 지켜본 카메라 기자들은 비틀거리거나 걷기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은 촬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루스벨트의 이름을 따 1996년 ‘제1회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을 만들었고, 2009년부터는 이 상을 ‘올해의 장애인상’으로 명칭을 바꿔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지요.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복지와 사회발전에 기여한 모든 이들이 이 상의 주인공입니다. 김수정 기자 재활과 건강 심근경색 이후 운동 및 심장 재활 식습관의 서구화 및 신체활동 저하 등과 연관돼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혀 발생하는 협심증, 심근경색 등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의 발생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혈관이 심하게 막힌 경우 관상동맥조영술 후 스텐트를 이용한 시술, 관상동맥우회술이식 등을 시행하게 됩니다. 심근경색 재발 및 조기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아스피린 등의 항혈소판제, ACE 억제제, 베타차단제 등의 약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운동을 비롯한 식습관 개선, 금연, 스트레스 관리 등 생활습관 개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심근경색 이후 당연히 운동도 하고 담배도 끊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 한 연구에 의하면 심근경색 전 흡연 중이던 환자의 45%는 심근경색 이후에도 여전히 흡연 중이었고, 심근경색 이후 충분한 운동을 하는 경우도 25%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본인의 의지 외에도 의료진에 의한 교육이나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특히 운동의 경우 개인별로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심혈관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강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이 운동 기반의 심장 재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17년부터 심장 재활 참여 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고, 2019년에는 국내 심장 재활 임상진료지침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 심장질환자의 운동과 심장 재활 효과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운동의 효과는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한 움큼의 약을 매일 복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저밀도지단백질(LDL)을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지단백질(HDL)을 높이며, 혈압과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혈소판이 뭉치는 현상을 감소시켜 혈관 내 피떡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관상동맥 혈류를 증가시킵니다. 심근의 산소요구량을 감소시켜 심장에도 직접적인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또한 운동을 통해 우울증을 예방하며, 기억력 등 인지기능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운동 기반의 심장 재활은 심혈관질환 환자의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의학적으로 증명돼 있습니다. 운동은 운동의 종류, 빈도, 강도, 시간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운동의 종류에는 크게 스트레칭,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이 있는데, 이번에는 주로 유산소 운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산소 운동은 체내에서 산소를 소모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운동입니다. 걷기, 달리기, 수영, 자전거, 에어로빅 등 숨을 차게 하는 운동을 말합니다. 이때 산소를 소모하는 정도에 따라 유산소 운동 강도가 결정됩니다. 조금 어렵지만 태스크대사율(MET)이라는 단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MET는 편하게 앉아 있을 때의 에너지 소모 속도이며, 3MET라고 하면 안정 시 세 배의 에너지 또는 산소를 소모하는 운동 강도를 의미합니다. 중등도 운동 강도라고 하면 3~6MET의 운동을 말하는데, 빠르게 걷기, 경사로 천천히 오르기, 천천히 자전거 타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6MET 이상의 운동은 달리기, 등산, 수영 등이 해당됩니다. 일반적으로 심장질환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3~6MET의 중증도 유산소 운동을 하루 30분 이상, 1주일에 5일 이상 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산소 운동에 대한 반응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계단을 몇 층만 올라가도 금방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이는 심폐운동능력치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운동 중에 숨이 찬 정도도 같이 살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숨이 조금 차지만 옆 사람과 이야기는 나눌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한 중등도 운동 강도에 해당합니다. 이런 강도로 매일 적당하게 유산소 운동을 유지하다 보면 심폐운동능력치가 개선되고, 같은 운동 강도에서도 숨이 덜 차고, 맥박수도 덜 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혈압이 있다면, 흔히 수축기 혈압이 20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115mmHg 이상이라면 의사와 상의해 혈압을 조절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당뇨가 있으면 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저혈당 증상(심한 공복감, 손 떨림, 가슴 두근거림, 심한 피로감, 식은땀 등)을 숙지하고, 이에 대비해 운동 전 미리 사탕이나 음료수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흉통이나 호흡곤란도 반복된다면 역시 의사와 상의가 필요합니다. 혹시 최근에 심장 관련 질환을 진단받았다면 심장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장합니다. 심장 재활 전문의와 상담 및 운동부하검사를 통해 운동위험도를 평가하고 개인별로 적합한 운동 처방이 가능합니다. 혹시 걷거나 뛰는 데 문제가 없는데도 하루 종일 앉아만 계십니까? 오늘부터 빠른 걸음으로 하루 30분씩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김원석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이동우의 음악칼럼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태양은 계속 빛나고 있나요? 왜, 바닷물은 해변가로 몰려오나요? 그들은 이제 세상이 끝난 걸 모르나요? 왜냐면, 당신이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왜, 새들은 계속 지저귀나요? 왜, 별들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나요? 그들은 이제 세상이 끝난 걸 모르나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이 세상은 끝이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의아해해요. 왜 모든 게 이전과 같은지 난 이해할 수 없어요, 아니요 난 이해 못해요. 인생이 어떻게 그렇게 진행되는지 왜, 나의 심장은 계속 뛰나요? 왜, 나의 눈은 울고 있나요? 그들은 이제 세상이 끝난 걸 모르나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이 세상은 끝이죠. -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 전문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한마디 가르침을 기억하시는지요. “너 자신을 알라”. 어렸을 적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조금 웃기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소크라테스는 왜 이런 말을 했지?’라고요, 세상의 모든 것이 제 눈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던 때라 이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다툴 때 유식한 척하며 써먹었던 말로 기억합니다. “너 자신을 좀 알아라, 이놈아!” 같이 말이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제가 조금 더 자랐을 때,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당시 많은 제자와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다죠. “선생님! 그럼 선생님은 자신을 압니까?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십니까? 얘기해주세요! 도대체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대답해주세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도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금 알 듯 말 듯, 그런 여전히 깊이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을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다시 세상이 궁금해지고 원망스러워질 때마다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마주합니다. 넌 누구니? 어디서 왔니? 어디로 갈 거니? 왜 살고 있니? 어떻게 살고 있니? 이런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십중팔구 삶의 모든 애환과 고뇌의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우왕좌왕하곤 합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면서 감히 무엇을 좀 안다고 떠들며 살았을까요. 엄마를 안다고 했고, 제 자식을 잘 안다고 했고, 아내를 안다고 했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작가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척을 했어요. 비틀스를 안다고 했고, 술 몇 번 같이 마셨다고 유명 연예인을 잘 아는 척했고, 꽃과 나무와 달과 별 모두 안다고 했습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들에 대해 저는 조금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보았다고 해서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만져보고 들어봤다고 해서 어찌 그걸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인데 말입니다. 언젠가 제가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즈음해 어느 지역 구청에서 제게 강연 요청을 했습니다. 지역 장애인이 1년 동안 연습한 여러 장기를 무대 위에서 펼치는 1부 행사 뒤, 2부에서는 제 강연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죠. 해마다 꾸준히 하는 행사라는 설명이 반가웠습니다. 장애인의 삶을 깊이 보고 문화적 토양을 꾸준히 관리하며 발전시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느껴져서 참 근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행사 당일 제가 약속 시각보다 훨씬 일찍 가지만 않았어도 그 좋은 기분을 지금도 간직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장애인이 그간 갈고 닦은 작품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춤과 노래, 악기 연주와 연극 등 다양한 무대를 객석 맨 뒷자리에서 집중해서 듣고 또 느꼈습니다. 볼 수는 없어도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감동적인 무대를 보고 순수하게 흐르는 눈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눈물에는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1부 공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사회자는 지역의 여러 인사들을 소개했습니다. 행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단체장의 인사말, 행사와 관련한 여러 단체의 책임자를 호명하고, 그들이 차례차례 일어나 인사를 하지요. 그러던 중 사회자가 지역 인사 한 분을 소개했습니다. 특별한 분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소개받은 그분이 무대로 올라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식적인 말이 계속됐고, 그렇게 끝나겠지 싶던 찰나, 그분은 제게 독화살을 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제 곧 장애인이 무대로 올라와 공연을 할 것입니다. 어떤 장애인은 팔이 없고 어떤 장애인은 걷지를 못해 휠체어를 타고 나옵니다. 어떤 장애인은 말을 하지 못해 악기만 연주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지금 내가 온전한 몸으로 사는 걸 행복하게 느끼길 바랍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서 옆자리에 앉은 매니저에게 얼굴을 돌렸습니다. 매니저도 저를 보고 한숨을 쉬며 나직이 말하더군요. “뭐야….” 제가 물었습니다. “너도 들었구나?” 매니저가 다시 말했습니다. “저 사람, 도대체 뭐죠?” 저는 몸이 굳었습니다. 머리가 아득해졌고, 심장이 뛰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지역 인사의 축하 말씀이 끝나니, 사회자는 큰 박수를 관객에게 유도했습니다. 객석에서는 마지못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막이 올랐고 1부가 시작됐습니다. 물론 조금 전 귀 막히고 코 막히는 말씀을 내뱉던 그 지역 인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공연장을 빠져나갔지요. 공연을 보는 내내 가슴이 시리고 아팠습니다. 모든 관객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아니 저보다 훨씬 더 슬프고 아팠을 겁니다. 대부분이 장애인 가족이나 지인들이었으니까요. 행복함을 느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무대 위 공연자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할수록 객석은 한없는 슬픔으로 얼룩져갔습니다. 그 지역 인사는 공연장에 백 마리의 독사를 풀어 놓고 재빨리 사라진 야만인이자 테러범이었습니다. 저는 2부 무대에 올라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예고된 강연 주제를 취소하고 “1부 무대를 처음부터 객석 맨 뒷자리에서 함께 봤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인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강도 높은 비판을 했고, 반드시 그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구청의 행사 책임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인사와 만나게 해달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주일 내내 전화를 걸어 닦달한 끝에 어느 날 불쑥 그 지역 인사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보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소 격앙되고 일방적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이! 이 선생! 내가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요? 뭘 사과하라는 거지? 이 선생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소! 지역을 위해서 종일 힘쓴단 말이오! 그 행사도 내가 얼마나 애를 많이 쓰는지 아시냐고! 내가 한 말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요? 틀린 말 하나 한 거 없으니까, 이 선생 혼자 오해하지 말아요. 자 그럼 끊습니다!” 저는 또 한 번 아연실색했습니다. 옆에 있던 매니저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하지 못한 예상을 매니저는 이미 했던 것도 같습니다. 순간 온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제 마음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진압할 수 없는 현실, 바꿀 수 없는 확고한 오류, 개선할 수 없는 굳건한 관념…. 이토록 커져버린 이기의 종양 앞에서 그냥 환부를 덮어야 하는 것인가. 저는 그날로부터 한동안 우울감에 젖어 지냈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위로해주었고, 또 어떤 이는 그게 세상이라며 저를 어린아이처럼 대했습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고취하고 복지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와 취지는 인간애의 본질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인간애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찌 자신을 알고 타자를 이해할까요. 더욱이 그런 사람이 힘과 권력을 갖게 됐을 때 얼마나 큰 사회 모순과 혼란이 빚어지겠습니까. 그 혼란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픔에 빠지게 되는지요. 제 길동무 중에는 그래서 날마다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날마다 꿈꾸는 거라고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저는 세상을 향한 탐구의 눈을 잠시 감았다고 여기렵니다. 자신과 쉼 없이 마주하고 자신을 공부하려 합니다. 그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래야 소통도 있고, 협력도 있고, 봉사도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도무지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동우(가수 겸 코미디언) 살며 생각하며 나는 장애인이다 내 이름은 권순철이다. 누구나 나처럼 각자의 이름이 있고,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부른다. 다양한 호칭으로도 불린다. 이는 나이나 하는 일에 따라 변하게 되는데, 갓 태어났을 땐 신생아로, 학교에 다닐 땐 학생으로, 직장생활을 할 땐 직장인으로 불린다. 다양한 지식을 쌓은 사람은 지식인,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인,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조인으로 불린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사람은 ‘장애인’으로 불린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처음부터 장애인으로 불렸던 건 아니다. 오래전, 외견상 뚜렷하게 드러나는 기능적 결함을 본 사람들은 ‘병신’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불구자’라는 용어로 바꿔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자 무능함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1년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자’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애자라고 부르던 그 시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늘 동정적이었기에 ‘사람 자’ 대신 ‘사람 인’을 붙인 ‘장애인’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1989년부터 장애인이란 용어가 공식화됐다. 위에 언급했듯이 장애인을 ‘병신’ 혹은 ‘불구’로 표현했으나 장애 종류에 따라 다양한 호칭 또한 존재했다. 청각장애인은 ‘벙어리’나 ‘귀머거리’로, 구개파열로 인한 언어장애인은 ‘언청이’라고 칭했고, 지체장애인은 손상된 부위나 장애 정도에 따라 ‘난쟁이’, ‘꼽추’, ‘절름발이’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도 세월에 따라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다. 가장 오랫동안 불린 ‘맹인’을 비롯해 고려 종사품 벼슬이었던 ‘소경’, 조선시대 종팔품 관직이었던 ‘봉사’라는 말이 시각장애인 대신 사용됐다. 조선 중기 시각장애인 단체 맹청에서 형으로 보기에는 연령이 높고 아저씨로 보기에는 연령이 낮은 손위 시각장애인을 ‘길 장’에 높임말인 ‘님’을 붙여 ‘장님’이라고 불렀던 기록에 의해 시각장애인을 ‘장님’으로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이 호칭들은 쓰이지 않는다. 장애의 종류를 설명하는 호칭, 장애를 가진 사람을 높여 부르던 직관적 호칭에 조롱과 멸시, 비하, 차별의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도 이 명칭들은 비하 표현으로 설명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비하 표현으로 쓰이지 않는 걸까? 나는 한동안 1인 미디어 플랫폼인 아프리카TV를 애청했다. 지상파에서는 만날 수 없는 BJ의 거침없는 멘트와 콘텐츠가 신선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선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온 계기가 있었다. 그날도 난 아프리카TV 앱을 켰다. 한 방송에서는 전화 연결을 통해 시청자의 장기자랑을 듣는 코너를 진행했다. 방송을 재미있게 듣던 중 내 귀를 의심할 만한 BJ의 멘트가 들렸다. 다소 엉뚱하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장기자랑을 듣던 BJ가 “진정한 장애인 올림픽이 시작되고 있네요”라고 말한 것이다. 해당 시청자의 다소 모자란 행위가 BJ 입장에선 마뜩잖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를 도전의 상징 중 하나인 패럴림픽에 빗대다니…. 이는 명백한 장애인 비하 행위임이 분명하다. 장애인이라는 호칭이 호감 가지 않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피해야만 하는 장애물, 넘어야만 하는 장애물, 넘을 수 없는 장애물 등 온갖 부정적 의미를 다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장애인이라는 단어. 그렇다.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2006년 4월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 인식개선의 일환으로 ‘장애인 명칭 새로 만들기’ 공모를 진행했고, 같은 해 6월 입상작을 발표했다. 당선된 명칭은 ‘가능인(할 수 있는 사람)’, ‘가온인(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 ‘늘품인(항상 발전할 가능성을 가슴에 품은 사람)’, ‘새살미(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사람)’ 등이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당선된 명칭을 뒤집어 보면 가능하지 않고, 사회가 보호해줘야 하며, 어울리지 못하고, 어둡게 산다는 것”이라며 “표지만 긍정적이지, 실상은 부정적인 면이 숨어 있는 용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은 대체어를 찾을 수 없어 32년째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장애는 누구에겐 취약점이고, 누구에겐 콤플렉스다. 일부 장애인은 “장애인 OO씨”라고 지칭하는 게 낙인이나 꼬리표 같아서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장애가 나의 정체성,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기술과 의학이 발전할 경우 내 장애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나의 시감각이 절대 돌아올 수 없다면 애써 붙잡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는 분명 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지점이고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지만, 그게 바로 나다. 기능이 없는 나의 눈은 나의 일부다. 나는 장애인이다. 장애인이라는 명칭 대신 아무리 높은 관직을 뜻하는 단어를 써도, 손윗사람을 지칭하는 호칭을 써도, 직관적인 명칭으로 해당하는 사람을 불러도, 아름답고 예쁜 순우리말이더라도, 얼마든지 비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는 아픔이고,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 시련이 쉽게 해결될 수 없다면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적응하는 게 훨씬 건설적이다. 장애가 있는 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걸 당당히 밝힌다면 부정적인 의미가 조금이나마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권순철(칼럼니스트) 문화재 이야기 창경궁(사적 제123호) 조선시대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궁궐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다.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됐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했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으며, 1911년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3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원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았고, 궐 안의 동물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돼 있다.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