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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솔빛 - [171호]‘2014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참여 후기 /김헌용(시각장애 1급,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2학년)

작성자담당자

작성일시2014-10-24 오전 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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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나라, 영국!

‘2014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참여 후기

 

김헌용 (시각장애 1급/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2학년)

 

여기 영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축구와 펍, 버킹엄 궁전과 대영박물관으로 유명한 나라.

하지만 영국을 장애인과 연결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이번에 영국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 8월 21일부터 29일까지 나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2014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사업에 참여했다. 참가 주제는 ‘시각장애인 전문 통번역사의 길 모색’이었다.

 

주제를 이렇게 선정한 것은 현재 내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전공하면서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시각장애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은 네 개 기관을 방문하고, 다섯 명의 인사를 만나고,

네 가지 문화 체험을 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왕립시각장애인협회(RNIB)를 두 번이나 방문했다.

왕립시각장애인협회는 1868년 시력에 문제를 겪던 의사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 현재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700여 개의

시각장애 관련 단체들의 연합체이며 50여 개 부서, 3천 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 영국 최대 장애인 단체이다.

하는 일은 각종 캠페인(정치인이나 정부와 접촉하며 권익 활동을 하는 일까지 포함), 전화상담, 시각장애 관련 연구,

시각장애인 보조기기 개발, 교육, 고용 등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협회가 위치한 킹스크로스 역에서 전철을 내릴 때

방송으로 협회 광고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국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종 장애 관련 웹사이트는 물론, 다양한 문화 관련 정보를 검색할 때도 곳곳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왕립시각장애인협회로 연락해보라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협회가 시각장애인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 많은 홍보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아무래도 시각장애인 통역사로 일하는 앤드류와 대학에서 번역을

전공했다는 타라였다. 둘 다 전맹이었고 그중 타라는 영국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먼저 충격적이었던 것은 영국에서는 통번역사가 그다지 인기 있는 직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에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 오는데 국민들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도,

통번역사가 필요한 경우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반문했다.

그럼 당신들은 왜 통역과 번역을 하냐고. 그들의 대답은 또 다른 반전이었다. 그저 좋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전체적인 취업률은 영국도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일을 하는 장애인들의 직종은 일반인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에서는 시각장애인 직원이 박물관의 장애인 접근성 관련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만난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각자의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일이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이번 여행에서 다양한 문화 체험을 했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연극을 관람했고 대영박물관을 방문하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녔다. 문화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현장에서 접근 가능할 뿐 아니라(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에서는 조선 백자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러한 정보들을 미리 웹사이트에서 충분히 조사해보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웹사이트 접근성은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고, 런던 시내 주요 문화재를 화면해설로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도 있었다.

내가 영국에서 느낀 것은 영국은 법이 먼저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행복 추구가 우선인 사회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제도가 없는 경우에도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장애인이 많고, 그렇기에 곳곳에서 장애인을 배려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국과 우리나라의 인구 통계를 인용하고 싶다. 영국의 총인구는 6천 3백만 명이고 그 중 장애, 건강상의 불편함을 지닌 인구는 1천 1백만 명(약 18%), 시각장애인은 2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명이고 그중 장애인은 250만 명(약 5%), 시각장애인은 25만 명이다. 선진국인 영국에 왜 장애인이 더 많을까? 그것은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지원을 기준으로 장애인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영국 사회가 얼마나 장애를 일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진정 영국은 장애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