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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솔빛 - [155호]희망을 찾아서-온 나라 국악경연대회 대상 수상자 이현아 씨를 만나다

작성자담당자

작성일시2013-06-17 오전 10: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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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인 이현아 씨 

 

 

“시각장애인 국악인이 아닌 국악인 이현아로 기억되고 싶어요”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 대상 수상자 이현아 씨를 만나다

 

지난 4월에는 제33회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는 국립국악원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대회로 국악계의 등용문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데요. 이 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이현아 씨가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현아 씨는 현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관현맹인전통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국악 중에서도 국악의 성악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가 부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현아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국악인재 등용문으로 불리는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소감은 어떤지?

일단 지금 이 자리에 있도록 지도해주신 김병오 선생님께 가장 감사드린다. 또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변종혁 선생님과 항상 뒷바라지 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매진하라고 주신 상이라고 여기겠다. 더 좋은 소리, 가곡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언제부터, 어떻게 국악을 접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노래를 잘한다는 끼는 엄마가 알아채신 것 같다. 원래는 서양 클래식 성악을 배우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국악의 성악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가를 알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박종순 선생님께 정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부터는 김병오 선생님께 배웠다.

 

-현재 시력은 어떤 상태인지?

시각장애인 1급으로,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전맹이다. 태어났을 때 800g의 미숙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게 되었고, 인큐베이터에서 산소과다로 망막이 손상됐다. 이후에 두 번에 거쳐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시력을 아예 잃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힘들었거나 인상 깊었던 점은 없었는지?

이번 대회처럼 큰 규모의 대회는 처음 나가는 것이라 대회의 규모를 알고 많이 놀랐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대회보다 긴장이 됐었다. 특히 대상경연 전에는 속으로 ‘편하게 하자, 욕심 부리지 말자’라고 여러 번 되새겼다. 긴장하지 않고 경연에 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의 예선, 본선은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현아 씨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예선, 본선에서는 장애여부뿐만 아니라 지원자가 누구인지 아예 알 수 없다. 헛기침만 크게 해도 실격이 될 정도로 규정이 엄격하다. 심지어 물을 마실 때도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지원자들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만 불린다. 대상경연 전까지는 심사위원들도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악보를 볼 수 없는데 새로운 음악을 배울 때는 어떻게 익히는지 궁금하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는데 수업내용 전체를 녹음한다. 레슨이 없는 날에는 녹음내용을 들으면서 수업내용을 외운다. 이런 방법으로 연습해 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녹음을 많이 했다. 수업내용을 완전히 숙지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수업내용을 숙지하지 못하면 다음 수업에서 진도를 나갈 수 없다.

 

-정가의 경우, 반주를 해주는 다른 음악인들과의 호흡도 중요할 것 같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에서 다 같이 연습을 할 때는 자기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마음도 열려 있어야 하고 교감을 해야 한다. 일단은 각자 외워서 연습을 한 후에 모여서 서로의 소리를 듣는다. 이 후에는 다 같이 호흡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곡을 무대에서 연주하기 위해 몇 개월이 걸린다. 이처럼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각자 자기 부분을 외워서 연습하고 다 같이 모여서 맞춰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더 걸린다.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다른 학교의 경우 장애지원센터나 도우미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 단과대학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강의실을 이동할 때도 매번 부모님이 도와주셨다. 많은 것이 어려웠지만 가장 어려웠던 일은 교재를 만드는 일이었다. 교재를 일일이 한 장씩 다 뜯어서 스캔을 하고 텍스트 파일로 정리한 다음 점자정보단말기에 옮겨야 점자로 읽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4년 내내 했다. 가끔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필요한 유인물을 수업시간에 바로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엄마가 옆에서 유인물 내용을 불러주면 점자정보단말기로 직접 입력하는 식으로 교재를 만들었다.

 

-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 또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널리 대중에 알려져서 사랑받고, 시각장애인분들께도 희망이 되어드리고 싶다. 시각장애인 국악단체가 아닌 국악단체, 시각장애인 국악인이 아닌 그냥 국악인 이현아로 기억되고 싶다. 노래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시각장애인분들이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이번 대회를 통해 배웠다. 많은 분들도 용기 잃지 마시고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국악인이 아닌 국악인 이현아로 기억되길 원한다는 현아 씨. 앞으로 좋은 소리로 공연하시면서 현아 씨의 꿈을 펼쳐나가길 바랍니다.